熊野古道 松本峠の石橋を訪れて。
笛吹橋の特徴
笛吹橋は特徴的な欄干を持つ石橋です。
熊野古道 伊勢路に位置し、歴史的な背景があります。
ここは韓国人にとって悲しい歴史を秘めた場所です。
欄干に特徴のある石橋です。地味ですが、名前の由来が分かります。
熊野古道 伊勢路は松本峠を降りたところにありました。ここから獅子岩までは25分ぐらいです。また、その先の花の窟までは、40分ぐらいです。
| 名前 |
笛吹橋 |
|---|---|
| ジャン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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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電話番号 |
0597-85-3839 |
| 営業時間 |
[日火水木金土] 11:00~20:00 |
| HP | |
| 評価 |
4.5 |
| 住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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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국인들에게 아주 슬픈 역사를 간직한 곳입니다. 이곳 기노모토에서 조선인 학살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노모토 학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1920년대 당시, 일본에서 조선인들은 좋지 않은 인식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식민지 조선인들을 특별히 선인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피를 빨아 먹는다거나, 지저분하다거나 식민지인 주제에 당당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선인을 낮춰 부르고 하대했습니다. 당시의 신문등의 언론에서도 선인에 대해 편견이 있는 기사를 많이 썼습니다. 그런 시대였기에 조선인들에 대한 일본 주민들의 시선은 편견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기모토 에서 이세신궁으로 가기 위한 바닷길에 접어들기 위해서 터널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터널 공사에 많게는 조선인 200명이 동원됐습니다. 그들 중에는 가족 단위도 있었습니다. 1926년 1월, 기노모토 인근의 극장에서 일본주민과 조선인 노동자의 사소한 시비가 있었고, 이로 인해 일본인이 조선인 노동자 이기윤과 배상도씨를 살해했습니다. 살해한 일본인 집단은 동네 주민과 자경단, 소방대원등의 평범한 일본인, 일본 주민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유언비어,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인 노동자들은 그들을 죽이려는 일본 자경단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사건은 일본인 조선인 양족 중에서 많은 이들이 체포되었고 재판을 통해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 대부분은 천황의 즉위 기념으로 모두 풀려났지만, 조선인들은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살해당한 이기윤 씨에겐 아내와 어린 자녀가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재일 조선인들과 뜻있는 일본인들은 이곳에서 죽은 이기윤씨와 배상도씨를 추모하기 위해 그들이 공사를 했던 터널 인근에 추모비를 세우고, 근처 절에 묘비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구마노시에서는 그런 학살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 들리게 된다면 꼭 이기윤 배상도씨의 추모비를 방문해서, 편견과 차별에 대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곳 후에후키 다리 근처에는 조선인들의 함바가 있었고, 그들은 이곳에서 살해당했으며, 다리 근처에 며칠동안 방치되었습니다. 그런 장소가 이 다리입니다.